게시일: 2026-02-11
통화 위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대개 ‘첫 매도 주문’이 아닙니다. 진짜 분기점은 정책 당국이 더 이상 방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검은 수요일은 영국 파운드화가 유럽의 고정환율 체계 안에서 더 이상 방어되지 않았고, 결국 파운드화가 변동환율로 전환(자유 변동, float)되도록 허용된 날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글로벌 자본이 정부의 환율 약속을 얼마나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에피소드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신뢰라는 제약은 지금도 모든 고정환율·밴드제·관리변동제 통화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일자: 1992년 9월 16일
체제: 영국의 유럽환율메커니즘(ERM) 가입
중심환율: £1 = DM 2.95(독일 마르크)
변동허용폭: ±6% (상대적으로 넓은 밴드)
방어 수단: 외환시장 개입 + 긴급 금리 인상 발표
최소대출금리(MLR) 12%로 인상, 15% 인상 발표 후 철회
결과: 영국은 ERM 참여를 중단하고 파운드화는 변동환율로 전환
영국은 1990년 10월 ERM에 가입하면서 단순하지만 강한 약속을 내걸었습니다. 허용된 변동 범위 내에서 정부는 개입과 금리를 사용해 환율을 중심환율에 맞추겠다는 약속입니다. 영국은 £1 = DM 2.95로 가입했으며, 몇몇 핵심 회원국이 사용하던 좁은 밴드가 아니라 ±6%의 넓은 밴드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였습니다.
DM 2.95를 기준으로 하면 ERM 환율 회랑은 대략 DM 2.773 ~ DM 3.127입니다. 파운드화가 하단(바닥)으로 밀릴 때 정책의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금리를 올려 파운드화 자산의 기대수익을 높이거나
외환보유액으로 파운드를 매수해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도구는 결국 신뢰에 의존합니다.
일시적인 금리 인상은 “충분히 오래 유지돼 공매도 세력에 실질적 고통을 줄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믿을 때만 방어력이 생깁니다. 외환개입도 “보유액 규모와 정치적 의지가 시장을 버틸 만큼 크다”고 믿을 때만 효과가 있습니다.
1992년 중반으로 갈수록 시장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ERM의 설계는 회원국들의 인플레이션과 경기 사이클이 대체로 정렬돼 있다는 전제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은 이 전제를 깨뜨렸습니다. 독일은 재정 확대와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해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해졌고, 반대로 영국은 취약한 회복 국면과 둔화되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완화가 필요했습니다.
영국중앙은행(BOE)의 사후 요약은 이 긴장을 직설적으로 설명합니다. 독일은 통일의 인플레이션·재정적 파장을 감당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영국은 ERM 약속 때문에 독일보다 명목금리를 충분히 낮추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인플레이션 전망이 개선되는 가운데 실질금리가 상승했고, 성장과 물가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는 악화됐습니다.
시장은 정식 전망치가 없어도 이런 충돌을 감지합니다. 금리 스프레드, 선물환 헤지 비용, 그리고 해당 패리티를 방어할 정치적 가능성을 통해 이를 추론합니다. 국내 경제가 취약할수록 “정치적으로 감내 가능한 최고 금리”는 방어의 상한선이 됩니다. 시장이 “필요한 방어 금리가 그 상한선을 넘는다”고 믿는 순간, 공격은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합리적 전략이 됩니다.
1992년 늦여름, ERM은 이미 펀더멘털 괴리로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정치가 타임라인을 더 촉박하게 만들었습니다. BOE는 9월 20일 예정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대한 프랑스 국민투표가 시장 긴장의 직접적 초점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비준이 실패하면 환율 재조정 가능성이 커진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시장은 “먼저 밀어붙이고 나중에 확인하는” 방식의 베팅에 더 큰 유인을 갖게 됐습니다.
이탈리아 리라화 평가절하 이후 압력은 더 커졌고, ERM 환율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발언들이 겹치면서 시장의 공격은 정점에 가까워졌습니다. 중요한 점은, 파운드화 방어가 점점 달러 대비로도 과대평가로 보이는 수준을 요구하게 되면서 정책 신뢰가 약화됐다는 것입니다.
환율 방어가 기초가치와 괴리돼 보일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하단으로 더 밀릴수록 페그 붕괴 시 기대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매도 압력은 강화되는 구조입니다.
9월 16일의 결정적 전개는 BOE의 운영 기록에 매우 상세히 남아 있습니다.
파운드화는 강한 압박 속에 개장했고, 이른 아침부터 ERM 하단에 근접했습니다. BOE는 다른 중앙은행들의 지원을 받으며 “매우 대규모”의 직접 개입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단기금리는 긴급 긴축을 예상하며 급등했습니다.

오전 11시: 파운드화가 하단에 머무르자 정부는 MLR을 12%로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시중은행들도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페그를 지키기 위해 금융여건을 더 조이겠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더 분명했습니다. 매도는 계속됐습니다.
오후 초반: 자금조달 스트레스가 급격히 심화됐습니다. 개입은 국내 유동성을 흡수하고, 결제 수요가 쌓이면서 단기금리는 정책 의도와 무관하게 급등합니다. 이것이 방어전의 고전적 메커니즘입니다.
오후 2시 15분: 다음 날부터 MLR을 15%로 인상한다는 추가 발표가 나왔지만, 파운드화는 하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후 7시 30분 직후: 재무장관은 영국의 ERM 참여 중단을 발표하고, 15% 인상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9시 30분에는 MLR이 다시 10%로 인하되었고, 이는 방어가 국내 제약에 부딪혔음을 확인해줬습니다.
이 시점에서 파운드화는 실질적으로 “부유”하게 됐습니다. ERM 밖에서 파운드화는 더 이상 정책 회랑에 묶이지 않았고, 다시 시장 청산 환율로 돌아갔습니다.
즉각적인
BOE가 제시한 특정일 기준 금리·환율 표만 봐도 즉각적인 재가격이 확인됩니다.
| 날짜(1992) | $/£ | DM/£ | 1개월 스털링 인터뱅크(%) | 3개월 선도금리(%) |
|---|---|---|---|---|
| 9/14 | 1.8937 | 2.8131 | 10.09 | 10.26 |
| 9/16 | 1.8467 | 2.7784 | 27.00 | 11.35 |
| 9/18 | 1.7435 | 2.6100 | 10.19 | 8.40 |
| 9/30 | 1.7770 | 2.5095 | 9.22 | 8.20 |
환율이 가장 명확한 신호입니다. 9월 14일에서 18일 사이 DM/£는 2.8131 → 2.6100으로 약 7.2% 하락했고, 이후에도 더 약세로 이동했습니다.
금리는 체제 전환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9월 16일에는 유동성 스트레스로 극단적 수치가 나타났지만, 9월 18일에는 선도금리가 급락했습니다. 이는 환율 제약이 사라지자 시장이 완화적 정책을 기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정책 제약이 “부러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 양상입니다. 환율은 약세로 재조정되고, 금리 기대는 완화되며, 순수출과 실질 차입비용 하락을 통해 경기에는 자극이 들어옵니다.
검은 수요일을 재무부와 투기세력의 싸움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단기적 프레임입니다. 더 지속 가능한 해석은 제도적 관점입니다. 고정환율 약속은 일종의 조건부 계약이며,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반응함수가 페그와 양립 가능하다고 시장이 믿을 때만 유지됩니다.
IMF의 1992년 ERM 위기 논의는 통합된 시장에서 투기 압력이 얼마나 빠르게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중앙은행이 국내 여건을 악화시키는 방어 조치로 내몰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BOE의 기록 역시 제약을 명확히 합니다. 국내 경제의 필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수준의 금리 인상은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시장이 그 논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페그는 시장에 ‘일방향 옵션’이 됩니다.
ERM 탈퇴는 명목 앵커가 불필요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앵커의 형태가 바뀐 것입니다. 1992~93년은 개방 자본시장 환경에서 환율을 중심 디스인플레이션 수단으로 삼는 사고방식이 전환점을 맞은 시기로 평가됩니다.
영국의 경험은 한 가지 실용적 교훈을 강화했습니다. 통화 신뢰는 외부 패리티보다, 국내 목표와 투명한 반응함수에 기반할 때 더 견고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단순했습니다. 파운드 약세가 즉시 통화여건을 완화했고, BOE는 9월 말 추가적인 금리 인하 신호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정책의 가격 신호는 “하단 방어”에서 “국내 여건 안정화”로 바뀌었습니다(재정규율은 여전히 제약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검은 수요일은 영국의 유럽관, 중앙은행 신뢰, 거시조정의 정치경제를 바라보는 기준점이 됐습니다. 교훈은 “변동환율이 고통이 없다”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을 환율체제에 맡기면 더 급격한 조정이 뒤늦게 온다는 점입니다.
1) 검은 수요일이란?
1992년 9월 16일, 영국이 대규모 개입과 긴급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파운드화를 ERM 하단 이상으로 지키지 못하자 ERM 참여를 중단한 사건입니다. 체제는 고정 밴드 방어에서 변동환율로 전환됐습니다.
2) 영국은 왜 ERM에 가입했나?
유럽의 환율 안정과 디스인플레이션을 위한 명목 앵커 확보가 목적이었습니다. 영국은 £1=DM2.95, ±6% 밴드로 가입해 핵심 유럽 통화에 연동된 안정성을 통해 반인플레이션 신뢰를 ‘수입’하려 했습니다.
3) 1992년 9월 위기의 촉발 요인은?
정책 미스매치(독일 금리는 높아야 했고 영국은 완화가 필요)와 정치 촉매(프랑스 마스트리히트 국민투표)가 결합했습니다. 이로 인해 환율 재조정 가능성이 커졌고 파운드 방어의 신뢰가 약화됐습니다.
4) 금리가 정말 15%까지 갔나?
9월 16일 오후 2시 15분, 다음 날부터 MLR을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날 저녁 ERM 참여 중단과 함께 철회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MLR은 10%로 낮아졌습니다.
5) 변동환율 전환 후 파운드는 얼마나 떨어졌나?
BOE 자료에 따르면 DM/£는 2.8131(9/14) → 2.6100(9/18)으로 급락했고, $/£도 1.8937 → 1.7435로 하락했습니다. 밴드 제약이 사라지자 빠른 재가격이 발생했습니다.
검은 수요일은 미스터리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이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었던 정책 미스매치의 논리적 종착점이었습니다. 고정환율 약속은 독일식 긴축을 취약한 영국 경기 사이클에 강제했고, 정치 일정은 시장의 시험을 단 한 주에 압축했습니다.
파운드화가 하단에 도달하자 두 차례의 금리 인상과 대규모 개입이 실패했습니다. 시장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파운드화의 변동환율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체제 리셋이었습니다. 환율은 빠르게 재조정됐고, 자금조달 스트레스는 급등했다가 되돌렸으며, 국내 정책 제약은 느슨해졌습니다. 이 사건이 남긴 구조적 교훈은 분명합니다. 개방 자본시장에서는 신뢰가 가장 희소한 자원이며, 정치와 실물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행동을 요구하는 통화체제는 결국 시장에 의해 ‘부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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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ecb.europa.eu/pub/pdf/annrep/ar1992en.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