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일: 2026-07-02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또 한 번 시장에 하락 베팅을 걸었습니다. 이번 표적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종목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든 근거 가운데 하나가 한국 소식이라는 점인데요. 6월 30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남권에 약 8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 4기를 짓겠다고 밝히자, 버리는 이를 AI 투자 열기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지목했습니다. 다만 그의 경고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따져볼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테슬라·캐터필러·반도체 ETF(SOXX)에 대한 공매도를 공개
삼성·SK의 한국 800조 투자 발표를 AI 사이클의 '끝의 시작'으로 규정
근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00일 이동평균 대비 약 65% 높아 닷컴버블 이후 최대 괴리
반도체 업종 약 30% 조정 가능성 경고
실제로 7월 1일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6%대 급락했으나, 원인은 금리 상승·차익실현으로 'AI 붕괴'로 보기엔 일러
버리는 2025년 11월에도 엔비디아·팔란티어에 약 11억 달러 규모 풋을 걸었던 상습적 하락 베팅가
2008년 이후 비관 예측은 자주 빗나가, 이번 경고도 '참고할 신호' 수준으로 보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

마이클 버리는 헤지펀드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Scion Asset Management)를 이끄는 투자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규모 공매도를 걸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인물입니다. 그 이야기가 영화 '빅쇼트'로 만들어지면서 '버블을 예언하는 투자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AI 관련 주식의 고평가를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습니다.
현지시간 6월 30일, 버리는 투자자 서한을 통해 자신의 포지션을 공개했습니다. 공매도 대상은 엔비디아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테슬라, 캐터필러, 그리고 반도체 ETF(SOXX)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국을 콕 집었습니다. 하루 전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광주 등 서남권에 약 800조원 규모의 공장 4기 건설 계획을 내놓자, 이 발표를 자신이 베팅을 실행한 결정적 계기로 지목한 것입니다. 왜 하필 한국의 투자였을까요.
답은 사이클 산업의 오래된 생리에 있습니다. 기업들이 사상 최대 규모로 증설에 뛰어드는 시점은 대개 수요와 가격이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늘린 설비가 실제로 돌아가는 2~3년 뒤인데요.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가격이 무너지고 업황이 꺾이는 일이 되풀이돼 왔습니다. 모두가 낙관 속에 지갑을 여는 순간이 오히려 고점의 그림자였던 셈입니다. 버리의 눈에 한국의 800조원은 바로 그 전형적인 장면으로 비쳤습니다.
이 진단은 시장이 이미 걱정하던 '반도체 공급과잉' 시나리오와도 겹칩니다. AI 수요를 노린 공격적 증설이 시간이 지나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가격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사실 버리의 이런 베팅은 낯설지 않습니다. 불과 반년 전인 2025년 11월에도 그는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한 대규모 풋옵션(하락에 베팅하는 계약)을 공시했습니다. 기초자산 기준 규모가 약 11억 달러에 달했고, 그 직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장 과열을 경고하는 알쏭달쏭한 글을 올려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당시에도 공시 직후 두 종목이 잠깐 출렁였지만, 이내 상승세를 되찾았습니다.
버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는 유형이라기보다, 과열된 자산의 하락에 베팅하는 데 특화된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의 펀드(사이언 자산운용)는 규모가 크지 않고, 보유 종목이 한두 개에 그친 분기가 있을 만큼 포지션이 자주 바뀝니다. 게다가 그의 베팅이 공개되는 13F 공시는 분기 말 한 시점을 찍은 '스냅숏'일 뿐, 지금도 같은 포지션을 들고 있는지, 행사가나 만기 같은 조건이 어떤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식이 매번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빅쇼트의 그 사람이 또 붕괴를 경고했다'만큼 언론과 투자자의 시선을 끌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경고의 적중 여부와는 별개로, 뉴스로서의 흡인력이 큰 콘텐츠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런 헤드라인은 내용의 무게보다 화제성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경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이릅니다. 무엇보다 버리의 예측 이력이 들쭉날쭉합니다. 2008년을 맞힌 뒤로는 테슬라 공매도나 미국 증시 하락 베팅처럼 상승장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테슬라를 거품이라 저격했다가 일론 머스크에게 '고장 난 시계'라는 조롱을 들은 일화도 유명합니다.
실제 시장 반응도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포지션을 공개한 6월 30일만 해도 반도체지수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튿날인 7월 1일(현지시간) 분위기가 급변해,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가 하루 만에 6.27% 급락했고 마이크론은 10% 넘게 빠졌습니다. 얼핏 버리의 경고가 맞아떨어진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이 다릅니다. 이날 하락은 'AI 거품 붕괴'가 아니라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차익실현이 겹친 결과였고, 같은 날 팔란티어와 메타 같은 AI 소프트웨어·빅테크는 오히려 강세였습니다. 과열됐던 반도체 하드웨어·메모리에서 매물이 집중됐을 뿐, AI 전반이 꺾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AI 수요가 한때의 열풍이 아니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투자와 고성능 메모리 판매가 실제 실적으로 잡히고 있어, 기대만 부풀었던 2000년 닷컴버블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AI 강세장이 1~2년은 더 갈 수 있다고 보는 유명 투자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버리의 발언은 반드시 적중할 예언이라기보다, 과열 국면에서 한 번쯤 곱씹어볼 경계 신호로 읽는 편이 적절합니다.
유명 투자자의 포지션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위험합니다. 공매도는 진입 시점과 증거금, 손실 관리가 까다로워 개인에게 특히 불리하고, 버리조차 숏을 오래 끌다 손실을 본 전력이 있습니다. 차라리 신호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반도체지수가 이동평균에서 얼마나 벌어졌는지, 증설과 공급이 어느 국면에 와 있는지, 메모리 가격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피면 과열 여부를 스스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더욱 남의 일이 아닙니다. 코스피 이익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대형주에서 나오는 탓에, 글로벌 반도체가 조정을 받으면 국내 지수와 원화도 함께 출렁일 수 있습니다. 버리가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의 투자 발표를 신호로 꼽았다는 사실은, 한국 반도체가 이번 AI 사이클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과열과 조정 양쪽 가능성을 열어두고 위험을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마이클 버리의 견해와 공매도 포지션은 특정 투자자의 판단으로, 실제 시장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매도·레버리지 전략은 손실이 원금을 초과할 수 있는 고위험 거래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본 글은 시장 동향을 정리한 정보성 콘텐츠로, 특정 종목의 매매나 공매도를 권유하거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내용은 2026년 7월 2일 기준입니다.
버리의 베팅은 'AI 랠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는 오래된 물음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그가 한국의 대형 투자를 고점 신호로 지목한 데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반년 만에 되풀이된 경고이고 매번 헤드라인을 타는 소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붕괴의 예고'로 확대해석할 이유는 크지 않습니다. 유명 투자자의 한마디에 흔들리기보다, 밸류에이션과 업황 사이클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편이 훨씬 든든합니다. 신호는 참고하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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